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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창 오대산사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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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
평창 오대산사고(平昌 五臺山史庫)에 대한 정보입니다.
오대산사고란?


  • 조선 후기에 《조선왕조실록》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 역사 기록물을 보관, 관리하던 외사고(外史庫)입니다.
  •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 북쪽 10리 남호암 기슭에 있었습니다.
  •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다른 사고들이 피해를 입자, 전란 이후 외사고를 산간 오지나 도서 지역으로 옮겼습니다.
  • 오대산사고는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.

오대산사고의 역사

  • 1606년(선조 36)에 창건되었습니다.
  •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묘향산, 태백산, 강화도 등과 함께 오대산에 사고를 지었습니다.
  • 1717년(숙종 43) 사고 운영에 관한 상소문이 『사고절목(史庫節目)』에 남아있습니다.
  • 1913년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었고,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.
  • 2006년과 2017년 문화재 환수 운동을 통해 일부 되찾았습니다.
  • 2023년 11월,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과 의궤가 110년 만에 고향인 오대산으로 돌아왔습니다.
  • 현재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.

오대산사고의 관리

  • 오대산사고의 수호 사찰은 월정사였으나, 실제로는 영감사(靈鑑寺)에서 수호를 담당했습니다.
  • 1840년에 작성된 '평창 오대산사고등록'에는 사고 관리 내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.
  • 화재 위험 때문에 봄, 가을로 20명씩 수직(守直)을 세워 관리했습니다.

사고사(史庫寺)

  • 오대산사고 옆에는 사고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사고사(영감사)가 있었습니다.
  •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으나, 1961년 중건되었습니다.

참고 자료

  • 평창 오대산사고는 국가유산포털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.
  •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과 의궤는 현재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전시 중입니다.


평창 오대산사고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
개요
이름평창 오대산사고
로마자 표기Pyeongchang Odaesan Sago
영어 표기Odaesan National History Archives, Pyeongchang
종류사적
지정 번호37
지정일1963년 1월 21일
주소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번지
시대조선시대
면적827m2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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